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 또는 칠천 해전1597년(선조 30년) 8월 27일 칠천도[1] 부근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등이 도주 중 전사조선수군은 대부분 궤멸한국사 5대 패전 (주필산 전투,용인전투,쌍령전투,현리 전투) 중 하나정유재란조정은 꼬투리를 잡아 이순신을 파면하고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앉혔다도원수 권율이 원균에게 엄한 곤장을 쳐서 출전1597년 8월 26일(음력 7월 14일) 100척이 훨씬 넘는 판옥선, 거북선과 1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수군을 총동원한 원균[6]은 부산포 인근에서 바람과 파도를 고려하지 않고 적을 추격하다가 12척의 판옥선을 표류하게 해 잃어버리고, 9일에는 오히려 적의 반격을 받아 역시 많은 전선을 잃게 된다아군이 활 한 번 제대로 쏘지 못 한 채 패했다조선 수군은 가덕도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내리는데 일본의 기습을 받았고, 원균은 400명의 아군을 버리고 도주한다.원균지휘를 하지 않은 채 기록에 의하면 선상에서 폭음칠천량 해전의 대패로 조선 수군은 거북선(귀선) 3척[8]을 포함하여 배설이 이끌고 도주한 12척의 판옥선을 제외한 판옥선들은 전부 침몰조선 수군이 붕괴됨으로써 남해의 재해권이 넘어가 실질적으로 정유재란이 발발조선 수군을 공격한 일본군 병력이 단 두 척칠천량에 정박한 조선 수군 함대에 왜선 한 척이 접근해 조총 한 발을 쏘자 조선 수군 함대가 놀라 도망치다가 스스로 무너졌다원균은 도망치다가 소나무 아래에 숨어있던 일본군들의 습격을 받아 전사1597년 5월 16일(음력 4월 1일) 이순신은 백의종군칠천량 해전에 패한 후 조선 조정은 다시 9월 3일(음력 7월 22일)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권준을 충청수사로, 김억추를 전라우수사로 임명하여 전력을 재편남해안의 제해권이 일본군으로 넘어가게 되는 바람에 육군의 지원이 원활하게 진행되어 전라도까지 왜군이 침입하였다. 이때 뺏긴 남해안의 제해권은 이순신이 명량 해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일본군에게 있었다당시 조선 수군은 전...